바이오 대표주자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단독 인터뷰

연탄가게 아들 ‘흙수저’ 출신

40대에 창업 시총 3위 신화

“경영세습 않고 2년 뒤 은퇴”

“5천만원 가지고 사업 시작

처음엔 안 망하려, 다음은 돈

나중엔 이웃과 상생 위해 일해

한국서 사업한 것이 성공 비결”

“회장도 임원처럼 65살이 정년

일상 경영은 전문가에 맡기고

미래 준비하는 게 대주주 역할”

“총수 상속세 ‘대타협’ 필요

소득주도 성장은 가야할 길

노사불신 해소 총수가 앞장

기업, 변화 통해 신뢰 회복을”

그래픽_김승미“회장은 타이틀이지, 왕이 아닙니다. 회장이 70살이 넘도록 은퇴하지 않은 기업의 말로가 좋았던 적이 없어요.”

한국 바이오산업 대표주자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한겨레>와 만나, 창업자 출신 특유의 자신감으로 ‘서정진식 경영철학’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서 회장에게는 시가총액 3위의 바이오기업을 일군 ‘글로벌 기업가’, 연탄가게 아들 출신의 월급쟁이가 단돈 5천만원을 들고 일군 ‘흙수저 신화’,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한국의 두번째 부자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서 회장은 성공 비결을 “한국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폈다. 또 기업가정신은 없지만 자신만의 ‘개똥철학’은 있다며 “기업은 곧 사람(직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회장도 다른 임원과 동일한 정년 적용, 소유-경영 분리와 경영세습 비판, 주40시간 근무제, 노사간 불신 해소를 위한 총수 책임론, 상속세 관련 사회적 대타협론을 파격적이면서도 구수하게 풀어냈다.

인터뷰를 끝내며 서 회장이 한국 경제에 새로운 기업인상을 제시한 것 같다고 말하자 “너무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는 말아달라”며 손을 내저었다.

▲ 사전 질문지도 없이 기업 회장을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다.

“자유롭게 말하면 되지, 그런 게 꼭 필요한가. (2013년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들이 사전교육을 하는데 암기할 게 많아서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까 말리더라. 그래서 ‘내가 해먹은 게 없는데, 기억나는 대로 얘기하면 되지 않냐’고 했다. 조사관에게도 ‘복잡하게 기업조사 할 것 없으니 해먹은 것이 있냐고 물어봐라. 진짜인지 가짜인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조사관이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더라.” 검찰은 2014년 일부 무혐의 및 약식기소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 재계에서 친한 인사는?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 하림 김홍국 회장, 호반 김상열 회장 등 파운더(창업자)와 가깝다. 나는 약장사, 다른 사람들은 사채업자, 닭장사, 집장사다.”(웃음)

▲ 이른바 ‘금수저’ 출신 총수들은 어떤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여럿 있다. 하지만 그쪽은 대부분 (사정당국이) 조사 중이지 않나.”

▲ 셀트리온의 사정은 어떤가?

“우리도 지난해 선거관리위원회 빼고 다 조사받았을 것이다. 기업은 신뢰가 중요하다. 셀트리온은 매출의 98%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글로벌 기업인데, 흠집은 모두 한국에서 난다. 분식회계 건만 봐도 그렇다.”

서 회장은 민감한 주제를 먼저 언급했다. 셀트리온 계열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가 무형자산인 판매권의 매각을 매출로 잡아 회계처리하는 것이 적절한가와 관련한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 분식회계가 아니란 말인가?

“제약회사는 사람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정직성이 중요하다. 셀트리온은 거짓으로 회계처리를 한 적이 없다.”

▲ 이른바 ‘흙수저’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버지가 서울 구파발 기자촌에서 연탄가게를 했다. 친구 아버지 중에 기자가 많았다. 1988년 <한겨레>가 창간됐을 때 동네 사람들이 얘기를 많이 했다.”

▲ 실패한 대우차 임원 출신으로 40대 중반에 맨손으로 세계적 바이오기업을 창업했다.

“2002년 45살 나이에 5천만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의학자도 아니고 생명공학을 한 사람도 아니다. 이른바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 출신도 아니다. 나보다 훨씬 유리한 사람들이 많다. 절박해야 성공할 수 있다.”

▲ 취업난으로 힘든 한국 젊은이들을 격려한다면.

“사업 초기 죽기 살기로 했는데도 안되더라. 사기를 치지 않았는데 모두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자살을 결심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갑자기 죽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혼자 똑똑한 척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하려면 사람들이 나를 신뢰해야 한다. 그러려면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하루에 10명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해봐라. 요즘 젊은이들은 개인주의로 빠지는 것 같다. 그러면 대한민국 용광로의 불길이 꺼진다.”

▲ 셀트리온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만큼 근성을 가진 민족은 없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을 너무 모른다. 다만 한국인은 한 방향으로 가도록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품’을 팔아야 한다. 나는 우리 직원 300~400명을 모아놓고 얘기한다. 이것을 하루에 네다섯번씩 하면서 동의를 구한다. 그럼 직원들이 회장이 힘든지 알고, 저녁이 되면 ‘짧게 하라’고 말한다.”

▲ 직원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뜻인가?

“블라인드(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앱)를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내 욕도 있다. 대한항공 (기내 갑질) 논란이 터졌을 때 ‘우리 회장이 갑질했을까?’ ‘아마 했을 거야. 우리 회장 평소 어투가 아슬아슬하잖아’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사내방송으로 ‘여러분들 창피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서 회장은 또다시 거북한 주제를 먼저 꺼냈다.

▲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회사 규정상 직원들은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내가 미안해서 1등석 전용 바로 불렀는데, 승무원들이 제지해 언쟁이 일어난 것이다.”

▲ 결국 ‘못 말리는 직원사랑’이 발단인가. 요즘 기업가정신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기업가정신이 없다. 처음에는 망하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일했다. 다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일했다. 그다음에는 한국과 같은 불모지에서 바이오사업을 한다는 애국심으로 했고, 마지막에는 불우이웃 돕기로 상생하려고 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인데 얼떨결에 유명해졌다. 나이가 60대 중반이 되니 어떻게 떠나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한다. ‘폼’나게 떠나고 싶다. 돈은 숫자에 불과하다. 이왕이면 바람직한 기업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남들이 싫어하고 나도 동의하지 않는 것은 새 실험을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가정신은 없지만 나름의 ‘개똥철학’은 생겼다.”

▲ 그 ‘개똥철학’이 궁금하다.

“내가 제일 행복한 것은 우리 직원들이 밝게 웃을 때다. 기업은 곧 사람이다. 사람이 기업에 제일 중요한 자산이다. 진심으로 직원들 덕분에 성공했다. 사람끼리 융화하고 통합해서 시너지를 만드는 것이 기업 에너지다.”

서 회장은 ‘사람 중심 경영’의 실천 사례로 여직원 한명당 2명의 자녀를 무료로 돌봐주는 사내 보육원과, 직원 가족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구내식당을 소개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월초 기자간담회에서 65살이 되는 2020년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는데.

“회사 정년이 직원은 60세, 임원은 65세다. 회장도 다른 임원과 똑같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꼰대짓’을 한다. 아집이 강하고. 남의 얘기는 듣지 않는다. 기업의 선장이 꼰대면 큰일 난다. 내 마음이 흔들릴까봐 2015년부터 이미 직원들에게 약속했다.”

▲ 재벌 총수는 죽을 때까지 경영하는 게 관행인데.

“정년은 조직을 위해 정한 것이다. 회장은 신이 내린 아들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다 조직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서, 회장만 불로초 먹고 도움이 된다고 하면, 그건 회사가 아니라 왕국이다. 회장은 타이틀이지 왕이 아니다.”

▲ 퇴진 이후 계획은?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지주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에서 유(U)-헬스케어(의료와 정보기술(IT)을 융합한 미래형 원격의료) 사업을 할 생각이다. 전문경영인은 일상 경영을 맡고, 대주주는 미래 준비를 해야 한다. 또 창업아카데미를 만들어 후배 양성도 하려고 한다.”

▲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서, 두 아들은 회사 대표가 아니라 이사회 의장을 맡기겠다고도 했다.

“아들들이 대주주로서 계열사 대표 인사권은 행사하겠지만, 일상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좋다. 또 나하고 유-헬스케어 사업을 할 것이다.”

▲ 다른 재벌은 모두 경영세습을 하는데.

“내가 회장이지만, 사실 최대주주는 소액주주다.”

▲ 요즘 재벌 2·3세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일이 잦다.

“두 아들은 유학을 못 가게 했다. 2·3세 모임에도 나가본 적이 없다. 모두 전셋집에 살고, 차는 카니발이다. 아들들에게 아직 주식 한 주 물려주지 않았다. 애들에게 ‘내 자식인 것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 다른 총수들은 상속세 부담이 너무 무겁다고 불만이다.

“명목세율이 50%이지만, 대주주의 경영권 할증을 적용하면 65%로 높아지고, 세금을 내려고 주식을 팔면 양도세까지 내기 때문에 실제 세부담은 80%에 달한다. 합법적 상속은 불가능해,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주식의 절반은 국가에 내고, 절반은 가족이 물려받도록 하는 방법이 좋은 것 같다. 대신 불법 증여나 상속은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 셀트리온의 사업 비전은?

“내가 은퇴하는 2020년까지 현재 1조원 정도인 매출을 4조~5조로 늘리려 한다. 후배들에게는 2023년까지 10조원에 도전하라고 한다. 2030년까지는 250조 전체 항체 의약품 시장에서 최소 15% 이상 차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안에 중국에 진출하고, 연내 글로벌시장 직접판매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새로운 산업을 키워야 국민이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다.”

▲ 지난 1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셀트리온 직원은 일거리가 있으면 집으로 가져간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주52시간제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다. 그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가장 큰 특징인 일하는 근성을 말한 것이다. 셀트리온은 이전부터 출근부도 없고, 주40시간 이상 일하지 말라고 했다. 샐러리맨을 해봐서 아는데 하루 8시간 집중해서 일하기도 힘들다.”

▲ 일부 대기업은 총수들이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임직원들도 새벽 출근을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잘못이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면 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민생경제에 대한 제안이 있다면.

“소득주도성장은 가야 할 길이다. 공정경제도 당연하고, 혁신경제도 앞서가야 한다. 그런데 경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용주의로 접근해야 하고, 분위기가 중요하다. 경제를 자꾸 사회적 화두로 올리면 좋지 않다. 특히 극단적이거나 비관적인 얘기는 안 해야 한다.”

▲ 다른 문제는?

“노사갈등을 없애야 한다. 노사문제는 불신 때문에 생긴다. 그룹 총수가 불신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직원들이 나를 노조위원장이라고 부른다. 셀트리온의 구매나 채용에는 담당자 외에 아무도 관여하지 못한다. 급여는 국내 동종업종 최고 수준이다. 직원평가 항목에 ‘잘했다’와 ‘보통’만 있고, ‘못했다’는 없다. 대리·과장은 연차만 쌓이면 모두 진급시킨다. 직원평가에서 3분의 2의 동의를 얻지 못한 리더는 직위해제된다. 내가 샐러리맨 때 겪은 것을 토대로 만든 나만의 방식이다.”

▲ 한국 기업이 시대 변화나 국민·사회 요구에 둔감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제 기업이 변해야 한다. 기업이 그렇게 하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변화를 통해 불신을 없애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게 맞춰야 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신민정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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